유아교육학

어떤 놀이가 아이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까?

p2zza20 2025. 3. 2. 10:00

 

1. 놀이에 대한 경험적 인식


    어른이 되어서 귓가에 맴도는 즐거운 추억은 “ㅇㅇ아, 노~올자” 일 것이다. 특별한 놀잇감이 없어도 두세 명이 모이면 놀이터를 만들어 내고 땅거미가 질 때까지 놀곤 하였다. 6.25 전쟁터에서 유년기를 보내야 했던 70~80대 어른들은 폐허더미에서 주운 전쟁의 파편들을 가지고 놀았던 것을 추억하였다. 1960년대 보릿고개를 경험해야 했던 60~70대 어른들은 빨간 벽돌가루로 버무린 풀이피리 김치로 소꿉놀이 했던 것을 그리워하였다. 한편 50대 어른들은 197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과로 부쩍 늘어난 놀잇감 가게 창문에서 한 발짝도 뗼 수 없었던 기억을 즐겁게 말하였고, 40대 어른들은 1980년대 컬러 TV가 보편화되면서 원더우먼, 슈퍼맨, 6000만 불의 사나이와 함께 타잔, 맥가이버를 따라 극놀이에 열중했던 것을 회상하였다. 소비가 미덕이다가 IMF 지원까지 받아야 했던 1990년대는 놀잇감, 놀이터, 게임의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화와 정보ㅘ 시대로 특징짓는 2000~2010년대는 멀티미디어의 활용과 함께 전통놀이가 부각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이렇듯 세대마다 처한 시대적-사회적 상황에 따라 놀이의 양상은 변화했지만, 놀이에 대한 공통적인 추억이 있다. 어느 연령에서나 그네 타기, 낙서하기, 그림 그리기, 소꿉놀이, 선생님 놀이, 사방치기, 공놀이, 고무줄놀이, 물놀이, 모래놀이, 개구리 잡기, 옛날이야기 듣기, 노래하기, 춤추기, 읽어주는 책 보고 듣고, 미끄럼 타기, 우리 집에 왜 왔니 놀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 점토놀이, 곤충 잡기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놀이가 시대를 뛰어넘어 이어져 왔다. 유아들은 왜 이런 놀이들을 좋아할까? 대학에 갓 입학한 청년들에게 “어릴 적 놀았던 경험을 회상해 보고 그 느낌을 단어로 말해보자” 고 하였다. 30명의 대학생들에게 나온 단어들은 다음과 같았다.

위의 단어들을 들여다볼 때, 놀이에 대한 경험적 인식이 크게 정서적 즐거움과 인지적 관심으로 대별됨을 알 수 있다. 우선, 놀이는 아무 부담 없이 자유롭게 시작하고, 재미 있어서 자꾸 하게 되고, 열심히 만든 것을 부수면서도 아깝기보다는 즐거웠다는 인식이다. 다음으로는 처음에는 생각 없이 놀다가도 어느새 머릿속에는 생각이 떠올라 다르게 놀 다 보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면서 뿌듯했다는 인식이다.
이와 같이 어른이 되어 추억한 유아기 놀이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인데도 불구하고, 실제로 어느 시대에나 부모가 갖는 인식은 완전히 개방적이지 못한 경향이 있다.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니지 노는 곳은 아니라는 고정된 사고에서 쉽게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2. 놀이의 내적 동기화 요인

 


    영유아들은 천성적으로 놀이하기를 좋아한다. 누가 일부러 놀거리를 마련해 주거나 놀이하는 방법을 말해주지 않아도 영유아들은 놀이를 만들어 가며 논다. 그러나 어른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과제를 수행하도록 강요하거나 지시할 때, 많은 아이는 이를 거부하거나 소극적 태도를 보인다. 로저스와 소여는 놀이가 어른에 의해 제시된 과제나 일과 다른 점은 우선 내적 동기를 갖는다는 점에 있다고 하였다. 내적 동기는 행동의 결과나 성취에서 만족을 찾기보다는, 행동 자체나 행동과정에서 만족을 얻는 것을 말한다. 레비는 내적 동기화된 놀이를 하는 유아는 진지하게 놀이에 몰두하여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기도 하고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유아들은 내적으로 동기화된 놀이를 하면서 세상에 적응해 가는 법을 알게 되어 성숙해 간다고 할 수 있다.
놀이가 내적 동기회 되는 이유에 대해서 갓프리는 여러 학자의 견해를 기초로 인지적 불일치-유능감-귀속성의 세 가지 요인이 놀이에 작용하고 있음을 밝혔다.

 


    1) 인지적 불일치


        영유아가 이전에 알고 있거나 경험한 것과 다른 새로운 상황을 만나 갈등이 생길 경우 그 갈등의정도가 적당한 수준의 것이기만 한다면, 영유아는 갈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동기가 일어나고 이를 놀이로 시도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견해는 인간은 본래 인지적 욕구가 있는 존재라는 데에서 출발한다. 쉐일레와 브리튼은 영유아는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으며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자신의 생각을 시도해 보면서 세계를 탐구해 가는 특성을 갖고 있다고 하였다.
예. 4세 유아 학급의 역할놀이 영역에는 약솜, 마스크, 청진기, 수술 장갑, 가운, 인형, 처방철 및 연필 등이 비치되어 있었다. 영호는 가운을 입고 청진기를 목에 걸며 비치된 소품들을 쭉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처방철을 발견하고는 “이게 뭐지?” 하며 갸우뚱하였다. 처방지 위에 있는 Rx 글자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연필로 5,2이라는 숫자와 자기 이름 및 낯익은 철자들을 썼다. 선생님이 오자, “환자한테 약 써줬어요.” 하고 말하였다.

위에 사례에서 유아는 놀이 영역에 비치된 자료를 가지고 스스로 문제점을 발견하여 그것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적용하여 시도해 보는 놀이를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포만과 쿠쉬너에 의하면 영유아가 ‘뭔가 이상한데’ 하는 혼동감, ‘예상 밖인데’ 하는 놀라움, ‘내가 실수를 했나’ 하는 당혹감, ‘다른 뭔가가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의혹 등의 느낌이 있을 때 내적 동기를 갖고 능동적으로 놀이에 열중한다고 하였다.
인지적 불일치가 놀이의 내적 동기화를 일으키고, 이에 따라 놀이의 세계를 확장시켜 간다는 견해는 구성주의 시각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영유아들은 놀이상황의 모든 요소에게서 인지적 불일치를 인식하게 된다. 말하자면 놀잇감, 놀이장소, 놀이친구, 놀이주제, 놀이시간 등 놀이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이전에 해 오던 놀이상황과 다른 점이나 새로운 점을 발견하고  갈등을 느끼게 된다면 영유아는 불일치를 경험하는 것이다. 이때 놀이상황이 모두 전혀 새롭고 낯설 때에만 불일치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익숙한 놀잇감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느낌이 들 수 있고 미처 깨닫지 못한 점들을 새삼스럽게 발견할 수도 있다. 항상 하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놀이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시도할 수 있다. 구성주의에서는 영유아가 자발적으로 이전의 경험적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가면서 지식을 재구성한다고 보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지적 불일치는 놀이가 지식 구성의 중요한 방식인 것을 설명해 준다.

 


     2) 유능감

 

          영유아는 놀이를 통해 환경을 통제하고, 변활ㄹ 일으키며,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인과관계를 인식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확인한다. 이 같은 견해는 인간은 본래 환경 통제의 욕구가 있는 존재라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는 동식물을 비롯하여 하늘과 땅을 다 창조한 후에 이들을 통제하고 보전할 수 있는 인간을 마지막으로 만들었다는 구약 성경의 창세기뿐만 아니라, 거듭되는 세포 분열을 거쳐 가장 고등하게 진화한 것이 인간이라는 진화론에 근거해서도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이 통제해야 할 대상은 모든 경험의 세계, 즉 물리적 세계-사회적 세계-개인적 세계가 된다. 앤더슨과 메식은 환경 통제능력, 즉 유능성에 작용하는 하위 능력으로 자아인식 - 자기통제 - 기본 생활습관 형성 - 자기가치감 - 상황판단 - 민감성 - 긍정적 인간관계 - 역할 인식 - 행동조절 - 친사회적 행동 - 탐구행동 - 주의집중 - 감각능력 - 소근육 기술 - 대근육 기술 - 지각운동 기술 - 언어기술 - 범주화 기술 - 긍정적 태도 - 기억력 - 비판적 사고력 - 창의적 사고 - 유머 -문제해결 기술 - 융통성 - 논리 수학적 사고 - 일반적 지식 - 성취동기 - 자원 활용 능력 등 29가지를 열거한 바 있다. 이 능력이 조화를 이루고 상황에 적절하게 활용될 때 유능한 사람이되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영유아기에는 생활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놀이를 통해 잠재된 능력을 개발하고 확장해 나간다. 영유아기에 개발된 능력들은 이후의 발달과정에서 보다 정교화되므로 영아기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와 같이 영유아가 놀이를 통해 유능감을 발달시켜 나가는 것은 잠재된 능력들의 기능적 개발만이 아니라, 영유아가 주위로부터 존중받고, 용기 있게 도전 할 수 있으며, 성공적인 경험을 한다는 데 더욱 종요한 의미가 있다. 갓프리드는 유능감에 작용하는 심리적 요소로 자기 존중감, 도전, 성공감의 세 가지를 들었다. 이 세 가지 요소가 충족될 때 영유아는 주변 환경을 자신 있게 통제하는 유능한 사람으로 커 나갈 것이다.

 


     3) 귀속성

 

          영유아들이 놀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즐겁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놀이는 어른이 정해 놓은 목표도 없고, 어떤 결과물이 꼭 나와야 하는 부담도 없으므로 그저 좋고 즐거울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놀이는 영유아가 나름대로의 생각과 느낌을 펼칠 수 있는 안전지대라고 할 수 있다. 루소와 같은 자연주의자나 프로이트와 같은 정신분석학자들이 주장했던 대로, 인간은 본디 자연으로의 귀인 속성이 있다고 본다. 사회에 인위적 구조와 규칙, 제약이 있다면 자연에는 규칙과 자기 조절력이 있다. 놀이는 자연과 같은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영유아의 놀이는 자발적이다. 자발적 놀이는 잔설이 채 가시지 않은 초봄에 샛노란 꽃잎을 피우는 개나리와 같이, 영유아의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행동이다. 이와 같이 놀이가 영유아기의 자연스러운 생활방식임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놀이 욕구의 분출 기회를 갖고자 할 것이다. 그 부정적 예가 놀음->노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유아가 놀이에 관심을 보이지 앟는데도 억지로 놀이에 몰두하도록 이끌기 위해여 어른이 칭찬이나 보상을 자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무분별한 칭찬이나 보상에 길들여진 영유아들은 놀이에 대한 흥미보다는 어른이 제시하는 놀이에 수동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다. 더구나 발달에 적합한 수준 이하로 수행한 것에 대해서도 칭찬과 보상을 할 경우, 영유아는 그 수준에서 만족할 것이며 자신의 능력을 확장시키기 위한 필요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인지적 불일치, 유능감, 귀속성의 세 가지 요인은 놀이의 동기화를 잘 설명해 준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들이 영유아의 놀이상황에서 모두 작용하는 것은 아니며 영유아의 발달 수준이나 놀이 자체 성격에 따라 한 가지 요인이 주요할 수도 있고 또는 세 가지 요인이 다 작용할 수도 있다.